산지골이야기산지골지기의 소소한 일상이야기

삼월 근심 그리고

Author
Jinkook Ryu
Date
2017-07-06 05:01
Views
4368
2007/4/15 (14:42) ....hit >>  10479
일요일 아침,
하늘엔 은빛 장막이 드리워져 있습니다.
우리 집과 마을을 둘러싼 산엔 연두빛 커다란 꽃들이 무리지어 있구요.
이제 막 새순을 내민 나무들은 멀리서 보면 마치 꽃처럼 보입니다.
가끔은 하얀 돌배나무 꽃과 분홍빛 개복숭아꽃들도 보입니다.

이미 벚꽃들은 바람에 꽃비를 뿌리며
지상에서 사라져 갔습니다.
얼마 전 내린 거센 봄비에  땅 속까지 4월의 기운이 깊이 내려간 듯합니다.
4월의 기운이 깊이 내려가
아직 잠자고 있던 나무의 뿌리와 씨앗들을 깨웠는지
늦게 싹이 트는 감나무 고목들에도 새순이 났고,
석류나무에도 붉은 순들이 고개를 살핏살핏 내밀었습니다.

사실 이들 고목이 순을 내기까지,
작은 씨앗들이 땅 위 흙을 뚫고 순을 내밀기까지
겨우내 잠만 자다,
그 느긋함에서 깨어나 봄이 전해주는 거센 기운을 받아들여야 했을 거란
느낌이 꼭꼭 마음속에 쟁여지는 봄입니다.
올 봄은 봄이 전해주는 계절의 신비에 마음이 홀려
즐거운 마음이기보다
그 땅 속, 나무속 보이지 않는 이미지가 내내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를 않네요.

어제 민박 온 손님이 있는데,
오늘 아침 일곱 살 배기 그 집 아들과 6학년 딸과 아주머니와 함께
같이 달래를 캐러 갔습니다.  일곱 살 아들의 흥겹고 천진한 모습에,
그만 우리 아이들도 저만 했으면  지금 이 순간이 참으로 행복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우리 아이들은 중간고사에 대비해
시험공부를 하고 있으니......  ‘이미 아이들이 커버려서 재미가 없네요.’ 라고
아주머니에게 말하고 보니 정말 아이들 초등학교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이맘 때면 뒷산으로 올라가 나물도 같이 캐고, 산책도 같이 다니며,
정말 순수한 즐거움에 빠졌었는데......

큰 아이가 고등학생이 되고 보니, 그 계절이 가져다주는 순수한 즐거움이 더 한참 물러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즐거움들.  꽃과 신록의 나무와, 그리고 나물들.   아이가 입시경쟁에 뛰어들었다는 현실이 그런 즐거움을 있는 그대로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도시의 숨 막히는 그런 경쟁은 아니겠지만,  엄연히 본인 앞에 놓인 현실! 그걸 무시할 정도로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무모한 것도 아니기에, 본인이 헤쳐 나가기를 바라지만, 어느 때는 ‘쟤가 겨우내 잠자고 있다, 봄이 되었는데도 깨어날 생각이 없는 씨앗이나 고목이 아닌가?’란 근심이 불현듯 찾아옵니다.


오늘 아침은 민박 온 손님의 아이들과 잠시 그 순수에 좀 더 다가가 달래를 캐고 산책을 했습니다.  물론 그런 근심도 잠시 잊었습니다.   그 근심은 3월 내내 마음속에 머물다 이젠, 서서히 빛이 바래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아이들이 거센 비와 바람을 받아들여 새순을 키워내는 봄처럼  그리 되리란 느낌을 꼭꼭 마음속에 다지기를 하니 한결 그 근심이 가벼워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학생으로 학교에서 만나는 모든 아이들도 그럴 거란 생각을 해봅니다.  학교의 아이들이 모두 풋풋한 새순을 내민 나무란 느낌이 전해져 옵니다. 작은 나무 큰 나무, 새순을 많이 내민 나무, 좀 덜 내민 나무, 가지가 많이 뒤틀린 나무, 곧게 뻗은 나무!  그러나 모두 화려한 봄날을 꿈꾸고, 장엄한 여름을 향해 가고 있는 나무들이란 느낌!

달래를 캐고,
우리 부부는 강가를 돌아 산책을 했습니다.
아주 흐린 날도 아니고,
화창한 봄날도 아닙니다.
그러나 하늘 은빛이 드리운 차분한 봄날입니다.
돌아오다 어디서 가벼운 종소리를 들었습니다.
쇠로 만든 종소리가 아닌
오르르 오르르
종 모양의 작은 야생화들이 내는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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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on.gif 이규태
[2007/4/24 (12:49)]
우리는 벌써 그런 근심을 안고 사니 어쩌지요? 우리가 너무 조급한 것인지 아니면 당연한 것인지 정말 헷갈립니다. 봉화에 귀농하여 사는 어떤 분이 쓴 글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그 복잡한 공부가 인생을 행복하게 해주지 않거늘...' 이런 말에 마음이 기우는 제 자신이 너무 무책임한 현실회피일까요... del.gif
icon.gif 산지골
[2007/4/24 (20:13)]
좀 이르네요. '아직 어리거늘.....'  부모로서 당연한 걱정이기도 하지만..... 걱정 속 산책하다 들려온 야생화나 들풀이나 나무들이 내는 것같던 오르르 소리에 그 근심을 조금 묻었답니다. ㅎㅎ  잘 지내고 있지요? del.gif
icon.gif 김용규
[2007/4/26 (7:37)]
큰 곳에서만 행복을 찾는게 아니고 작은곳에서도 행복이 가득함을 산짓골님의 글에서 풍겨나오는군요. 숨어 있는 행복의 덩이를 누가 많이 찾아내느냐가 문제인것 같습니다. 들판의 작은 꽃, 산골의 향기, 골짜기 물소리, 봄의 전령사 달래 냉이의 풀에서도 행복 덩이를 잘도 찾아내시는 산짓골님네가 부럽습니다. del.gif
icon.gif 산지골
[2007/4/28 (11:32)]
김선생님 잘 지내시죠? 마을에 자주오시는 것 같으신데 오시면 자주 들러주세요. 잠깐 차 한잔이라도 하시고... 전화로도 자주 좋은 정보 주셔서 항상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