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골이야기산지골지기의 소소한 일상이야기

남편작품1호

Author
Jinkook Ryu
Date
2017-07-06 05:01
Views
4443
2007/5/12 (11:59) ....hit >>  11006
점점 해가 길어지고 있습니다.
해가 길어지매  다양한 꽃들이 피기 시작합니다.
이른 봄부터 피기 시작한 튤립은 오래전에 졌습니다.
그 커다란 꽃잎을 뚝뚝 떨구거나, 종 같던 꽃잎들이 오그라져서......
대신 매발톱들이 화단 여기저기 등장하여 그 길고 뾰족한 발톱을 곧추 세우고 있습니다.

newme.jpg

붓꽃, 또는 아이리스란 이름을 가진 꽃들도
그들에게 주어진 이 봄날을 기억하려
붓대를 쑥쑥 올려 그 끝에 그지없이 화려한 꽃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화선지가 필요 없는 붓들이지요.

iris.jpg

아이리스란 이름보다 붓꽃이란 이름이 더 멋있다는  생각을 하려는 찰나.....
마음속에 허영심이 휙 스쳐갑니다.
보랏빛과 자주빛이 섞인 붓꽃 보이지요?
그런 색과 감으로 된, 아니 꽃잎으로 된 그런 옷감이 있다면
그런 꽃 옷(?)을 잎고 싶다는 생각.

“저런 빛으로 된 옷을 한 벌 해 입고 싶다.  멋있겠지?”

한참을 생각하던 남편 왈,
“어이쿠, 저런!  스스로 화려한 꽃이 되겠다?  남편을 위해서?”

남편은 ‘꿈보다 해몽!‘입니다.

“웃겨! 그냥 그렇다는 거지, 거기다 꼭 누굴 위해서는 왜 붙여?
그건 괜찮네!  꽃 같은 존재라는 건!“

잠시 그 색깔 묘한 꽃을 입고 있는 나를 상상해 봅니다.
그 붓꽃이 내게 가져다 준 허영심에, 또 남편의 그 해몽에 웃었습니다.

아무튼 요즘은 차 한 잔을 들고, 마당을 한 바퀴 돌면, 이런저런 다양한 꽃들을 만납니다.
달콤한 향을 풍기는 케모마일,  큰 꽃 으아리, 남산제비꽃,  샤스타 데이지, 이제 막 피어나는 장미 등등.
마당 한 구석엔 이런저런 꽃모종들이 새싹을 내밀고 제자리를 찾아갈 준비를 하고 있고요.

며칠 전, 퇴근하고 오니,
낯선 물건이 마당에 놓여있습니다.  나무로 만든 긴 의자(벤치).
SNV31036.JPG

멋있나요.  ‘남편이 만든 작품다운 작품 일번!‘이라고 이름 붙여주고 싶은 거 있지요.
물론 집 주변에 피는 다양한 꽃들도 남편의 작품이긴 작품입니다.  남편이 이런저런 꽃들을 구해서 심고, 키우고, 가꾸기에 꽃 보는 즐거움이 있지만, 꽃 하나하나에 ‘작품1, 2, 3..’ 이렇게 이름을 붙여줄 수는 없잖아요.

사실 남편이 나무로 뭘 만드는 재주는 별로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정말 별로입니다.  오래 전에 마당 한 켠에 흔들의자를 좀 만들어 달라는 내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이더군요.  자존심상 절대 못 만든다고는 하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과연 만들 수 있을까 의심은 들었지만, 계속 부추겼습니다.  ‘그 결과가 이 나무벤치가 아닌가‘라고 나 혼자 생각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차를 타서 이 나무 의자에 앉아 사방을 둘러보며 차를 마시니,
좋긴 좋네요.

“너무 좋다.  이왕 내친 김에 흔들의자도 만들지?”
“그러지 뭐!.....”
“언제?”
“.........”

언제 만들지는 묵묵부답!
‘흔들의자는 아니어도 좋다.‘는 말이 입에서 튀어나오려고 했지만, 참았습니다.
이 의자로도 만족이지만, ‘남편의 발전(?)을 위해 계속 흔들의자를 종용해야 되나 마나‘
좀 고민이 되네요.

의자에 앉아 있다
해가 길어져 다시 열린 저녁 산책길로 천천히 발걸음을 떼었습니다.

짙은 아카시아 꽃 향이 우릴 사로잡습니다.
구름이 잔득 끼고, 바람이 살살 불어오니, 그 향이 멀리 날아가지를 못하고
우리 산책길을 꽉 메웁니다.  덕분에 우린 아카시아 향 항아리에 풍덩 빠졌다 나왔습니다.
icon.gif 이규태
[2007/5/12 (21:44)]
붓꽃 색깔 정말 쥑입니다~~그렇게 강렬하지도 않고 희미하지도 않고 한폭의 채색 동양화를 보는 것 같군요. 나무의자는 마치 새총을 엎어놓은 것 같은데 올 가을에 우리 네 식구들 엉덩이도 좀 댈 수 있게 잘 관리해 주시길... del.gif
icon.gif 산지골
[2007/5/15 (20:6)]
네명이 앉을 수 있을라나 모르겠습니다. ㅎㅎ
독일산 붓꽃이라고 하는데,
우리 입맛에 맛는 색이라, 동양화 느낌이 난다는 말이 딱 맞는 표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