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골이야기산지골지기의 소소한 일상이야기

정원사 코시일기

Author
Jinkook Ryu
Date
2017-07-06 05:03
Views
2942
2007/6/12 (22:39) ....hit >>  11099
지리산 골짝마을에 가뭄이 들어 모두들 아우성입니다.
벌써 유월 중순인데 계곡에 물이 말라 아직 모내기를
못한 논이 많습니다.
모두들 비가 와야 하는데... 우째 이리 비가 안올꼬... 하며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습니다.
이런 어려운 시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니
정말 가슴이 아프네요.
그런데 내가 누구냐고요?

네이버에 동물검색 하니...
<코시. 코카 스파니엘. 나이 다섯 살, 직업은 정원사.>

개가 무슨 정원 일을 하느냐고요?
(지나가는 개가 다 웃겠다고요?)
하긴 나도 어째 하다 보니 정원사가 되었지만
뭐 정원일이 별건가요?
하루 두어 번씩 화단에 거름 주고
요즘처럼 화초들이 자라기 시작할 때 적당히
밟아주면 순지르기가 되어 꽃들이 많이 피는 거 아니겠어요?

오늘도 다알리아 화단에 들어가서 적당히 순을 지르며
예쁜 꽃을 많이 피우라고 풍성하게 웃거름을 주었더니
주인님이 <어이~ 코오시~ 됐다, 됐어, 오늘 세 번째다.
고마 해~>라고 하는데, 핀잔인지 칭찬인지 약간 햇갈리네요.
미간을 살짝 찡그렸지만 입가에 코털처럼 짧은 미소가
숨겨져 있어  은근한 칭찬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이건 조금 어려운 말입니다만,
우리 주인님도 인생 순지르기를 한번 했다고 합니다.
5년이 훨씬 지난  일인데요,
대도시에서 책과 관련된 일을 하며 한창 사업을 키우다가
<이제 순을 질러야지...> 하고는 이곳으로 내려왔다고 합니다.

다알리아든 인생이든 순을 지른다는 것은 멋진 것 같아
나도 용기를 내어 한번 질러볼까 생각중인데,
막상 지르려고 하니 가슴이 떨리네요.
사실 내가 정원일 하는 것을 주인님이 그리 탐탁히 여기는
것 같지 않아 이제는 그만  철학가가 될까 합니다.

높고 깊은 산골짝에서
강물이 흘러오고 흘러가는 것을 내려다보며 살면
저절로 철학가가 되는 법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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