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골이야기산지골지기의 소소한 일상이야기

황석산 산행

Author
Jinkook Ryu
Date
2017-07-06 05:32
Views
4352
007/10/22 (22:0) ....hit >>  11414
hwangserk.jpg
계절이 또 불현듯 바뀐 느낌입니다.
강가엔 아침이면 안개가 가끔씩 피어있습니다.
아직 늦가을은 아닙니다.
그래도 잡목들과 쉽게 추위를 타는 나무들은 색깔이 누렇고 빨갛게 변했습니다.
가을빛으로 변해가는 산을 지척에서 느끼고 싶은 마음에
황석산(함양군 서하면에 위치)을 다녀왔습니다.
정말 오래전부터 산성이 있다는 말을 듣고 가보고 싶었던 산이었지만,
기회가 잘 닿지 않았는데, 올핸 그런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새로 복원되었다기에,
고풍스런 맛이나 볼거리보다는 어떤 느낌을 가지고 올라갔습니다.

산행을 하기 전, 지난주에 우연히 도서관에서 ‘에게해’란 책을 만났는데,
그리스, 로마시대에 축조된 유적지를 탐방한, 사진에 큰 비중을 둔 여행서적이었습니다.
이 에게해 주변국인  터키와 그리스 지역엔 신전이나 기념탑, 원형경기장이 우굴 대는데,
대부분 거대한 돌로 축조된 유적들입니다.  사진으로 보는 거대한 석축물은 그 자체가 경이로움이지만, 그 거대한 석축물을 종교와 권력의 차이로 일부러 파괴했다는 사실이 더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런 건축물을 탄생시키고 파괴할 수 있는 권력의 무게가 엄습해옵니다.
세월이 흘러 그 거물엔 이끼도 끼고  빛이 바래 고풍스런 멋도 느껴지지만, 그것보다 그 옆에 건축물에 비해 터무니없이 작은 사람이 서있는 사진에선 여지없이 무거움이 느껴집니다.

그런 느낌 옆에, 이제 오를 황석산성은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산꼭대기에 만든 성곽들! 다른 산성과 마찬가지로 그 만든 이유를 대충 알고 있기에 권력이란 무거움보다는 생존을 위해 만든 절박함이 그것이죠.  목숨의 위협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자 애쓴 흔적들이란 느낌!

한 시간 30여분을 걸려 올라간 산꼭대기 능선들 위로 죽 늘어선 성곽들!  그 유럽의 석축물들에 비하면 정말 작은 돌조각들로 쌓아올린 성곽!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돌로 만들어진 성곽 위를 걸었습니다. 반듯반듯한 돌들이 아닌, 생긴 대로 납작납작한 돌들을 쌓아올렸습니다.  가을 숲이 주변에서 바람에 넘실대고, 가을산은 조금씩 깊어 가는데,  성곽을 걸었습니다.  배낭을 메고, 머리 위론 파란 하늘을 이고서.........

에게해 주변 그 거대한 유적들이 놓인 텅 빈 광장 황량함에 비하면, 황석산성의 배경은 무겁지 않습니다. 복원을 해서 무너진 흔적이 없기에 그 절박함은 머리속에서 생각해야 했지만,
작은 돌들로 이루어졌기에 생존을 위해 애쓴 흔적들이란 느낌은 여전합니다.
사실 그 생존과 생존의 위험이란 절박함은 뜻하지 않게 만난 ‘피바위’에서 느껴졌습니다.
너른 바위둥치를 두 군데서 만났는데, 둘다 이름하여 ‘피바위’! 임진왜란 당시 왜적에게 유린 당하느니 차라리 순결하겠다고 수많은 꽃다운 부녀자들이 몸을 던져 자결했다는 이야기! 그래서 피로 물들어 붉은 빛을 띤다는 데...... 약간 검붉은 빛이 보이기는 하지만 핏빛까지야......  섬뜩해서 다시 돌아보는 그 커다란 바위 덩어리!  어찌 이런 비정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을까 싶어 자꾸만 보게 됩니다.  그 수직으로 선 바위둥치를!  그런 일이 정말 있었느냐, 없었느냐를 넘어 그런 일이 없었기를 바라는 마음에,  ‘누군가 지어낸건 아닌가!’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런 비정한 이야기를 외면하고, 다시 바라본 ‘피바위’는 시원한 이마를 가진 잘생긴 바위였습니다.

수많은 돌들과 피바위와 산성을 지나 가장 꼭대기 정상을
간신히 오르니 바람이 거셉니다. 마치 이 황석산이 주변에선 제일 높은 산인양
여러 산봉우리들이 우리 발아래 있네요.  우리가 걸었던 산성곽이 마치 돌로 만든
길처럼 보입니다. 무엇보다 산이란 존재가 이리 고운 존재인지 눈에 들어옵니다.
잎 위 잎맥 무늬처럼 가지런히 늘어선 산줄기들. 어찌 보면 뒤 짚어 엎어놓은 꽃모양입니다.
하산하며 잠시 나 혼자 독백을 합니다.

“가을빛 내리쬐는, 산성 위로 걸어가는
현재란 시간을 지나는 우리들!

그렇게 얼마쯤 가다, 쨍한 화사한 빛과 바람만 남아있다.
어느새 그 궤도를 벗어나, 또 다른 시간 속으로 들어간 우리들!

그렇게 텅 빈 산성만 남아있다.

피바위 전설의 그들!  산성을 쌓았던 그들! 방금 정상을 지나 하산을 재촉한 그들!
모두 다른  시간속으로, 공간속으로 사라지거나 들어갔듯이......

그게 시간이라 할 수 있을까? 어떤 공간이라 할 수 있을까?
‘영원‘이라 하고프다.
우린 영원에서 또 다른 영원으로 향하며
맴돌고 있는 지도 모른다.“

hwangserk2.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