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골이야기산지골지기의 소소한 일상이야기

귀한 고사리와 손님

Author
Jinkook Ryu
Date
2017-07-06 01:41
Views
3040
2002/8/9 (13:5) ....hit >>  11716
이렇게 비가 오는데 집에 손님이 옵니다.   오래된 학교친구인데, 우리 부부의 인연을 맺어준 귀한 손님이지요.

손님이 오면 제가 기쁜 마음으로 준비하는 음식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부근 지리산에서 캔 고사리입니다. 도시에서 살적에는 손님이 온다면 육류 요리를 보통 준비하였습니다. 그런데 큰 기쁨은 없었지요.

새 집을 짓고 시골로 이사 왔다고 하니 찾아오겠다는 손님들이 많이 있습니다. 얼마 전 이웃 아주머니께서 직접 캔 고사리를 여러 묶음을 주셨는데, 저는 손님이 온다고 하면 이 고사리를 한 묶음씩 꺼내, 푹 삶아서 들기름에 볶아 냅니다. 손님들이 그 맛에 경탄을 하더군요. 지리산의 고사리는 그 향이 진하고 줄기가 부드러워 요리를 잘 못하는 제가 대충 볶아내도 맛이 납니다. 도시에선 웬만해서 맛볼 수 있는 나물은 아니기에 저는 손님이 온다고 하면 뿌듯한 마음으로 이 고사리를 꺼내 볶아냅니다.  이번에도 귀한 손님이 오기에 마지막으로 남은 고사리를 물에 담가두었습니다.

올 5월에 아이들과 함께 고사리를 캔 적이 있습니다.  그날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근 5일 만에 해가 쨍쨍한 날이었다.  뭉게구름이 하늘에 둥실둥실 떠있고,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면 은사시 나무들이 환희에 몸짓하는 날이었다. 봄은 이제 여름에 자리를 내주어야하는 아쉬운 5월이다. 들에는 풀들이 사람 발치를 넘어 정갱이를 넘보고, 산에서는 나무들이 한 치의 공간도 허락지 않는 시기.

일요일이지만 벌의 분봉을 받아내야 하기에 우리는 새로 짓고 있는 집주변에서 무엇인가 소일거리를 해야 했다.  사실 마당이 있고 밭뙈기가 딸려있는 집에서는 소일거리들이 너무 많다. 집 밖을 나서면 일이 지천이다. 잡초들을 속아내는 일에서부터 심어놓은 작물과 나무들이 사람의 손길을 기다린다. 밭에서 손을 놀려 일하다 병아리가 물 한 모금 먹고 하늘 한번 쳐다보는 식으로 푸른 하늘을 올려다본다. 바람에 부스스 잎사귀를 연주하는 은사시 나무도 한번 쳐다본다. 이러다보니 일은 더디다. 남편 역시 벌이 오늘은 반드시 나오리라 예상해서 벌집 주변을 일하다 한 번씩 둘러본다.  그래 조그만 밭뙈기에 콩 한줌 심는데 오전 내내 걸렸다. 점심도 벌집 주변에 앉아서 먹었다.  고추창에 나물을 뜸뿍 넣고 스슥 비며 감나무 아래에 앉아 상추쌈을 싸 먹으니 산해진미가 부럽지 않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벌은  나오지를 않았다.  오후 4시가 다 되어가니 남편은 오늘은 벌이 나오기 틀렸으니 아이들과 윗 산에나 가보자 한다. 그러면서 삽을 들고 나선다. 산으로 올라가면 무언가 캐올 것들이 항상 눈에 띈다. 항상 수확물을 거두어야 내려온다. 그러나 삽이나 호미가 없어  낭패를 본적이 많다. 그러니 남편은 이번엔 삽을 들고 나선다. 과연 삽으로 괜찮은 수확물을 건져올까.  나와 아이들과 강아지 래시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따라 나섰다. 난 달랑 휴대용 작은 칼 하나만을 들고서.  마음속에서는 저번에 캐던 고사리의 고부라진 머리와 통통한 밤색 자루대가 떠올랐다.  아직 있을까?  오래된 무덤가에 고사리가 제법 있었는데.

윗 산으로 올라가는 길을 찾기가 어렵다. 그 사이 풀들이 길마저 점령을 해버렸다.  방향감으로 풀들을 헤치며 위로 올라갔다. 드디어 그 무덤가에 도착했다.  무덤은 이미 패버린 고사리들로  가득 차있다.  바람에 나부끼기까지 한다. 아이들은 동적인 것을 좋아해 개구리며 메뚜기며 움직이는 생명에 관심을 두다,  엄마가  통통한 고사리 순을 몇 개 뜯고 나니 고사리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다.  한번 찾아보라고 슬쩍 빈말로 얘기했는데, 아이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기 시작한다. 하나 둘 찾아나가면서 아이들도 재미를 붙인다.  아이들 눈이 밝기는 밝은가 보다. 난 여러 번 고사리 캐기를 하고 나서야 고사리 순이 눈에 익었는데, 아이들은 처음부터 잘 찾아낸다.  아랫집 아주머니가 올라오더니 '아코! 고사리 씨앗이 마르건네.' 하신다. 두어 시간을 고사리 캐면서 보냈다.  난 고사리 캐기는 아이들에게 맡기고 도라지를 찾아보았다.  있을까하며 작은 고사리순을 캐려는데 내 눈 앞에 도라지 같은 풀이 있지 않은가!  세상에! 혹시 하며 살살 땅을 캐보았다. 뿌리를 있는 힘껏 잡아당겨보니 도라지가 맞지 않는가! 긴 이파리가 줄기를 중심으로 동그랗게 나있고 뿌리는 가게에서 가끔 사다 먹은 통도라지와 똑 같았다.  와! 웬 횡재!  하나 찾고 나서는 고사리 캐기는 아이들에게 일임(?)하고 난 도라지 찾는데 눈을 크게 떴다. 아이들도 연일 와!를 연발하며 열심히 고사리를 캔다. 도라지 찾는데 주력한 결과 도라지 5줄기를 캐고 산에서 내려왔다.  아이들은 재미있었는지 내년 봄에는 제일 먼저 올라와서 고사리 캐기 시합을 하잔다.  자신이 제일 큰 고사리를 캤다며 서로 뽐내는 모습이 이젠 시골 아이들이 다 되었다는 생각에 흐뭇했다.  내년에는 마을 할머니들이 훑어가기 전에 부지런히 발과 손을 움직여 고소한 고사리 일 년 먹을 것을 마련해야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세우고.....

(아이들과 고사리 캐기 5월 19일 일요일 200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