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골이야기산지골지기의 소소한 일상이야기

계속 이어지는 비와 생명

Author
Jinkook Ryu
Date
2017-07-06 01:42
Views
3456
2002/8/14 (15:12) ....hit >>  10684
이곳은 비가 열하루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은 채 오고 있습니다.
처음 며칠 동안은 뜨거운 폭염에 지친 나무와 식물들이 목욕을 한 듯 싱싱해 보이더군요. 맑은 산이 더욱 맑아진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비가 열흘 넘어 지지리 오니 참 불쌍한 것들이 많이 있네요.

우선 우리 아이들이 산으로 강으로 다니며 뛰어놀지를 못해 갑갑해 합니다. 그래도 인간은 책도 보고 인터넷도 하고 TV도 보며 소일거리가 있으니 아주 불쌍한 것은 아닙니다.

산의 나무와 식물들이 이제는 조금 지쳐 보입니다. 화단의 꽃들과 들과 산에 지천으로 핀 야생화들이 햇빛이 부족해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집 옆  길가에 장승처럼 서있는 하늘을 찌를 듯 서있는 소나무도 조금 우울해보입니다.

벌들도 열흘 넘게 꿀을 못 먹고 있으니 참으로 불쌍합니다. 점심 식사를 끝낸 남편이 "수해자들이 많네. 우리 벌들도 수해자야." 합니다. 산과 들 구석구석에서 살아가는 온갖 생명들이 지금 제대로 생명활동을 펼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밭의 작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배추는 햇빛 부족으로 누렇게 뜨고, 고추들은 여기저기 검은 반점이 생기고..... 그러니 참으로 불쌍합니다.

그중에서도 우리 집 개 래시가 제일 불쌍해 보입니다. 래시는 사람에 비유하면 지금 막 한참 뛰어놀 시기인 어린아이입니다.  아이들이 집 밖으로 나오는 소리를 용케 알아듣고 제집에서 잠자다가도 후다닥 일어나 같이 놀자고 컹컹 낑낑 댑니다. 아이들과 공차기 놀이 하는 모습을 보면 저 개가 개인지 인간인지 참으로 헷갈립니다. 아이들이 찬 공을 제법 앞발로 막기도 하고 멀리 나간 것은 물어오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집안에서 시끌벅적 노는 소리가 들리면 자신도 끼워달라고 하소연하는 소리를 낑낑 내기도 합니다. 이렇게 왕성한 놀이 욕구를 가지고 있는 개가 열흘이 넘게 제 집에서 꼼짝을 못하고 놀지를 못하니 제일 불쌍합니다. 이제는 지리지리한 비에 지쳐서 비가 마구 쏟아지는데 멍하니 비를 그대로 맞고 있기도 합니다. 집으로 들어가라고 아이들이 소리치고 을러대야 겨우 마지못해 집으로 들어가는 래시를 보면 참으로 불쌍합니다.

이번 여름 장마로 인해 비 피해를 당한 사람들을 비롯하여 모든 생명들이 참으로 안되어 보입니다.

햇빛이 쨍 비추일 날을 고대하며, 그 날은 잔치라도 벌여야겠습니다.

lacyplaying.gifrainand%20lacy.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