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골이야기산지골지기의 소소한 일상이야기

봄비 분봉

Author
Jinkook Ryu
Date
2017-07-06 01:35
Views
3659
..date >>  2002/8/6 (0:47) ....hit >>  13400
봄비가 부슬부슬 장마철인양 왔다.
봄비에 개구리들 울음소리가 봄밤의 정적을 메운다.
마을 어귀와 마을을 휘돌아 나가는  물길로 졸졸졸 물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올해 봄은 유난히 비가 많이 온다.  부슬부슬, 두두둑 떨어지는 비가 오는 와중에 집에 페인트 칠을 마쳤다.  하늘이 허락하지 않았는데 어거지를 쓰며 일을 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않았다. 물론 집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벌들도 어거지를 피우며 이 봄 속 장마 중에 분봉을 했다.  비가 며칠째 와서 고구마 심기에 적당하고 비도 그쳤기에 부리나케 남편이 고구마순을 사왔다.  벌집이 자리한 곳 바로 옆밭, 그러니까 짓고 있는 우리 집의 윗밭에서 남편은 고구마순을 다듬고 나는 고구마순을 심고 있었다. 남편이 불현듯 일어나 '나왔어!'하며 벌집쪽으로 달아나듯 가지 않는가! 난  '뭔데? 뭐가 나왔는데?'하며 우리가 벌을 키우고 있고 벌들이 분봉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다. 일주일을 넘게 벌들이 나오기를 기다리다 남편은 지쳐버렸었다.  이번주에는 분명히 벌들이 일을 저지를텐데, 비가 끊이질 않으니 기다림의 끈을 놓아 버렸다.

오전에 비가 그치기는 했으나, 산자락들 위로 구름층이 투터워 해가 날 것 같지는 않았다. 근데 웬일로 잠시 해가 쨍 나지를 않는가!  정말 잠시였는데.  벌들도 세력이 너무 커서 그 좁은 공간에서 더 이상은 기다릴 수가 없었는지, 해가 잠시 나온 틈을 타서 우르르 왱왱거리며 한 무리가 나왔다.  아이코! 그런데 달아 논 벌집으로 안가고 벌들이 아래쪽 감나무로 왱왱 가더니 감나무 기둥 줄기에 다닥다닥 붙어 버렸다.  남편은 급하게 메어두었던 벌집을 풀어서 다닥다닥 벌들이 붙어버린 기둥 위에 갔다 대려고 애를 썼다.
아이코! 급한데 끈은 잘 풀리지 않고, 간신히 풀어서 벌집을 대주려다 그만 감나무 가지가 뚝! 뿌러져 버렸다. 난 한숨에 이젠 글렀다 싶어 견불동에 사는 이웃 선아 엄마가 분봉하는 장면은 환상적이라 하였으니 그 감상이나 하려고 멀거니 서있었다.
이즘하면 남편이 체념할 줄 알았는데 느닷없이  쑥을 뜯어오란다. 감나무에 붙어버린 벌들을 쑥으로 쓸어 벌집에 담아보겠단다.  '어쭈, 아직 기가 안죽었는데..'라고 피식 웃으며 그것도 좋은 아이디어란 생각이 들어 엊그제 쑥 뜯던 자리로 가서 서너 뿌리를 캐었다. 키가 쑥 자라있는 쑥이라 줄기를 끊어내기가 쉽지를 않았다.  '그래! 남편이 끝까지 애쓰는데 나도 해보자' 싶어 얼른 호미를 가져다 흙째 뽑아내 흙이 뭉텅뭉텅이 붙어있는 쑥 뿌리 부분을 잘라냈다. 그랬더니 벌들을 쓸어담기에 괜찮은 빗자루가 되지 않는가!
쑥비(?)을 주려 감나무 근처로 가보니 벌들이 과연 한곳을 중심으로 벌떼처럼 붙어있다.  남편은 살글살금 다가갔다. 한 손에는 벌집을 들고 한 손에는 쑥비를 들고. 마치 벌을 꽤 많이 키워본 사람처럼 쑥으로 벌을 살살 쓸어 위쪽 벌집으로 벌들이 들어가게 하였다. 착한 벌들!
20~30분 정도 시간이 흐르니 벌집으로 많은 벌들이 다닥다닥 붙었다. 다급하여 분봉한다고 전화를 했던 견불동 아저씨도 그 사이 왔다. 조금 더 벌이  다닥다닥 붙자 미리 준비해두었던 얘네 벌들이 진짜 살 집으로 옮겨다 놓았다.  한시름 놓았다.  견불동 아저씨는 '야! 이집 벌해도 되겠네.' 한다.  아이코! 벌들이 우리를 봐준 셈이다. 운도 좋았다. 멀리 날아가 붙지 않고 다행이 바로 앞 감나무, 그것도 중간 나무 기둥에 붙었으니!

이렇게 분봉을 마치고나니  잠깐 보이던 해가 사라져 버렸다. 다시 비가 올 태세였다. 오후에는 드디어 비가 또 부슬부슬, 주르륵 왔다.  정말 극적인 분봉이었다. 벌들이 급하긴 급했다. 벌들이 이런 날씨에도 나왔으니 어거지를 피우며 이사를 하였다고도 할 수 있고,  하늘이 그 잠깐 사이에 해를 보내주었으니 저들의 급한 사정을 헤아렸다고도 할 수 있고......

우리가 들어가 살 집도 정말 어거지를 피우며, 또는 비가 줄기차게 오다가 일을 할랴치면 조금 늦추어지고 하는 사이 사이를 허락한 하늘이 지금 단칸방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딱한 사정을 헤아렸다고도 할 수 있다.

참으로 극적인 하루였다.

lacyandbee.JPGhouseback.JPG

(2002년 5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