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골이야기산지골지기의 소소한 일상이야기

비오는 날

Author
Jinkook Ryu
Date
2017-07-06 01:40
Views
3211
2002/8/9 (12:37) ....hit >>  13249
이곳은 비가 나흘째 끊임없이 오고 있습니다.
시골에 와, 우리가 살 집을 지으면서 중요한 사실을 정말 온몸으로 마음으로 깨닫게 된 일이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물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지식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우리 스스로 먹을 물을 구해서 집으로 끌어와야 하고 엄청난 비가 오면 대비해야 할  배수로를 스스로 만들어야 했기에 물을 다스리는 문제는 인간 생존에 절대적인 문제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껴야했습니다.

얼마 전 6월 장마가 시작되던 때, 지금보다도 더 비가 마구 쏟아 붓듯이 온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윗 밭에서 폭포처럼 물이 저희 집 쪽으로 쏟아져 내려 남편은 몇 시간동안 그 비를 맞으며 물길을 돌린다고 애쓰고 저도 도운다고 물에 빠진 새앙쥐가 되었지요.

그날의 일기가 있어 소개합니다.

비가 온다. 어제부터.
새집으로 이사 온 이후 비다운 비는 처음이다.  오이, 참외, 수박, 고구마 등 작물에는 더없이 좋은 비다. 이 비가 그치면 쑥 큰 모습이 눈에 선하다. 작물들 못지 않게 크는 것이 잡풀들이다. 뽑아내고 긁어내도 또 자라는 것이 잡풀이다. 하지만 어쩌랴 그들도 이 세상의 일원이거늘.

어제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을 때, 내심은 조금 긴장됐다. 집 주변의 물들이 큰일을 안낼까 싶어서.  쌓은 돌들에서 흘러내리는 물들이 만들어 논 물길로 잘 흘러 내려갈까? 지붕에서 떨어지는 물들이 집 쪽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흘러가야 하는데.....  물의 중요성을 또 한 번 깨닫는다.  수치. 이 작은 개인 집을 지으면서도 주변의 물들이 잘 흘러갈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은 중요한 일이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원리를 잊고 망동을 부리지 않는다. 또 흘러갈 곳이 없으면 낮은 곳에서 머무는 것이 물의 일이다. 인간의 심리와는 반대라고 빗대어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인간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상승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또 되도록 높은 곳에서 머물려는 속성이 있지 않은가! 그런 솟구치는 욕구를 억제하고 자연의 원리를 터득하고 거기에 맞춰 나가야 이런 시골에서 살 수 있음을 느낀다. 물이 낮은 곳으로 흘러가도록 배려를 하고 물길을 내주어야하며, 풀들이 한없이 자라면 보기 싫다고 제초제를 뿌리지 말고, 베어내고, 나무가 무성해지면 그늘을 만들어줌에 감사하면서.....

오후에 빗줄기가 조금 느슨해졌다. 비가 오니 자연이 한층 가까이 있음을 느낀다.  자연은 지금 뜨거운 여름을 맞이하기 전, 잠깐의 휴식을 취하는 것이리라. 또한 태양의 열기를 받아들여 열매를 맺기 위해 충분한 수분을 저장하는 시기이기도 한다.

나 또한 마음 속, 번잡한 일들을 미루어두고 창밖의 빗소리에, 내 안의 휴식과 리듬 소리에 충실할 시기이다.  창밖은 지금 칡넝쿨들이 온통 푸른빛으로 치장을 하고 있다. 그 커다란 잎과 무리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난 내 안의 잡다한 욕망들을 잠깐 접어둔다.
(비오는 날  6월 24일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