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골이야기산지골지기의 소소한 일상이야기

12번째 겨울로

Author
Jinkook Ryu
Date
2017-07-06 06:28
Views
6185
2013/11/23 (14:2) ....hit >>  3478
2013gokarm.jpg (껍질 벗은 감들..... )

일주일 중 가장 한가한 시간입니다.  토요일 오전.  일주일 내 출퇴근을 반복하는 생활에서 잠시 벗어나는 시간이라 좀 느즈막이 일어났습니다.  거실로 나오니 서늘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요즘 이 맘 때면 해도 저처럼 늦게 거실로 오죠.  밖을 자연스레 내다보게 됩니다.  어디 한 구석 햇살이 비치는 곳이 없고 바람이 부네요.  나무들은 그 바람에 춤추다 점점 나목이 되어갑니다.

주전자에 모과와 생강을 넣고 끓여 논 차가 있어 한잔 마시다 우연히 달력으로 시선이 갔습니다.  오늘이....?  23일!  이미 11월 끝자락에 와있네요.  어?  엊그제 아이들 수능시험 본다고 한 거 같은데.......  지난 주?  지지난 주?

지난주엔 큰아들이 왔었습니다. 두 달 만에 보니 뭐랄까  반갑고 애틋합니다.  에미는 이런데 아들은 사나이라 무뚝뚝합니다.
유난히 새콤달콤한 무침 반찬을 좋아하여 쪽파무침을 해주려고 텃밭으로 가니,  텃밭은 이미 한 물 갔습니다.  고추는 얼어버렸고,  쪽파는 시들시들.  쪽파무침 포기.  지지난 주 선배들 상에 내 논 것이 올해 마지막 쪽파.  상추와 쑥갓은 더 이상 크지 못하고 비실비실.
겨울바지가 두 벌 뿐이 없다하여 도톰한 바지 사준다고 진주를 갔었네요.  그러니 하루해가 다 갑니다.  남자아이들 옷도 요즘은 유행이 자주 바뀌어 1, 2년 전 거도 안 입으려는 옷들이 있습니다.  취향도 변해 또 안 입는 옷들이 생겨나죠.  그래도 에미맘에 오랜만에 집에 온 아들한테 잘 먹이고 입히고 싶어집니다. 그런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게임 좀 하다, 축구 보다, 강쥐들 밥주고, 아빠 감 나르는 일 돕고 다시 훌쩍 기숙사로 갔습니다. 그러니 좀 허전하네요.
그 허전함을 날씨도 아는 지, 아들이 가고 난 다음 날, 날씨는 구름이 잔득 꼈었습니다.  빗방울이 긋다, 해도 나왔다 잔득 구름이 몰려왔죠.   들쑥날쑥한 가을 끝자락,  그 끝자락 해가 그득하게 비추면 끝내주게 멋지고,  해 없으면 끝내주게 우중충했습니다.

지지난 주는 선배들 와서 바쁘게 시간이 가고 지난주는 아들이 와서 바삐 흘러갔습니다.
평소보다 바삐 흘러간 세월은 늘 뒤 끝에 허전함을 남기죠.

오늘은 한가한데,  춥네요.  거실 벽난로를 보니 타다만 장작이 있어 불을 지펴 보았습니다.  해 나올 때까지라도 지필 요량으로 불쏘시개 넣고 태우는데,  커다랗고 이미 까맣게 숯처럼 변한 장작은 활활 타오르질 않네요.  ‘니도 참 찌질하다.  장작이 활활 타야 맛이지. 불장난 같은 사랑 흉내도 못내네!’  괜스레 장작 탓을 합니다. 한 30여분 씨름해서 겨우 불붙었는데, 활활 타지는 못하고 찔끔찔끔 조금씩 탑니다.  이렇게 씨름하다 보니 해가 환하게 거실로 들어왔습니다.

근데 남편은 뭐하냐고요?  아직 감 깍는 일이 끝나지 않아 덕장에 있습니다.  같이 작업 안하고 웬 게으름이냐고요?  전 학교 나가면서 부터는 곶감일은 완전 남편일로 자리매김을 했습니다. 우선 제 체력이 따가가 주질 못하네요.  그래도 가끔 도와 줄 수 있지 않느냐고요?  그러다보면 여자 특유의 잔소리가 나올 수뿐이 없고....... 그 다음은 아시죠?  그래 아무리 바빠도 거의 도와주지 않습니다.  남편도 도움 요청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아무튼 우리 부부도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입니다.  금성에서 온 여자는 요즘 남편이 얼른 감 깍는 일을 마치고,  조금 여유가 생겨 벽난로만큼은 피워주기를 은근히 기대하며 일부러 못 피는 벽난로에 불 지피고 있습니다.  행동으로 보여주며 은근히 시위하는 겁니다. ㅋㅋ

다행히 곶감쟁이 10년이 다 되어가니 노하우가 생겨 올 핸, 감 깍는 작업이 빨리 끝나는 거 같네요.  울 남편 솔직히 기계치뿐 아니라 ‘~치’자가 붙는 것은 다 가진 사람이었거든요. (쉿! 조용히 말해야 겠네요.)  인터넷치(?)이기도 했답니다.  우리가 시골로 이사와 처음으로 살 집을 짓는 일 말고, 또 해야 했던 중요한 일은 허공에 가상의 집을 짓는 일이었습니다. 이 인터넷 홈을 제가 어찌어찌 배운 실력으로 만들었습니다.  한동안은 제가 늘 관리를 했죠.  남편은 금성여자를 믿고 이미지화일(사진) 하나 못 올렸습니다.  아니 타고난 ‘~치’도 문제였죠.  몇 번을 알려줘도 잘 못했으니까요.  한동안 학교 나간다는 핑계를 대고  이 가상의 홈에 발걸음을 안했습니다.  눈길도 안주던 때도 있었습니다.  매정했다고요? 그래도 할 수 없습니다.  전 금성에서 온 여자니까요.  그 사이 울 남편은 이런저런 ‘~치’에서 벗어나고 있는 거 같네요.  이 인터넷홈 관리도 오래 전에 화성남자 몫이 되었습니다.  전 집지은 건축업자로 가끔 보수만 합니다.  ㅋ ㅋ

주저리주저리 얘기하는 동안 벽난로가 그냥 꺼져가네요.  괜찮습니다.  이제 해가 만물을 비추기 시작했으니까요.  그러나  거센 바람소리가 벽난로 굴뚝을 뚫고 들려옵니다.  근데 정원 화분에 노란 국화는 생생 싱싱합니다.  저러다 눈이라도 팍 내리고,  기온이 뚝 떨어지면...... 그러면 아무리 해가 쨍쨍해도 바람을 이길 수 없는 완전한 겨울입니다.  여기서 맞이하는 12번 째 겨울입니다.

fireplace.jpg
(꺼져버린 난로)